청소년기 - “몰라”와 “싫어”로 시작하는 정체성 찾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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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 “몰라”와 “싫어”로 시작하는 정체성 찾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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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태어나 몸은 분리되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엄마와 한 덩어리라고 느끼는 공생기라는 가상의 시기를 지나, 기고, 걷고,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변 탐색을 하며 엄마의 품을 벗어난다. 하지만 아직 마음 안에 엄마의 심상이 제대로 내재화되어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혼자 놀다가도 순간순간 엄마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만 두 살 반에서 세 살 경이 되면 아이에게는 대상항상성이라는 기능이 탑재된다. 이제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의 이미지가 내 안의 나의 하나로 똬리를 제대로 틀었기 때문에 겁이 나거나 무섭지 않다. 엄마가 내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엄마와 분리되어있어도 나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아이의 마음 안에는 자연스럽게 부모가 제시하는 삶의 기준들이 1번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예를 들어 ‘다른 아이를 때리지 마라’, ‘어른에게는 공손히 하고 존댓말을 써라’, ‘공부를 열심히 해라’와 같은 것들이다.

아이는 이후로 별다른 저항 없이 부모나 학교, 사회가 제공하는 이런 기준과 목표치를 습득하는데 열중하며 십대에 진입한다. 거기까지가 인생의 1막이다. 그리고 이제 십대에 진입하면서 정체성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제 2막에 진입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2차 분리-개별화 과정의 시작이다. 부모를 동일시하던 나에서 ‘나만의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새로 부모와 사회에서 제공했던 표준들이 아닌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면서 ‘나’를 형성해야만 한다.

그 첫 번째 과정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게 된다.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저항이 없이 내 것으로 수용해왔던 것들이 모두 ‘부모와 선생님’이라는 기성세대가 준 것이고, 이것만으로는 내 것을 만들 수 없고, 그저 부모의 꼭두각시일수밖에 없다고 아이들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부정하고 부인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반항을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뻔 한 것들조차도 일단 부정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그냥 싫어서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내 것을 만들기 위한 부정과 파괴, 재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체적 부정을 통해 판을 확 쓸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온전히 내 것을 만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 심리기제다.

그러다 보니 십대의 아이들은 어떨 때에는 ‘하늘은 파랗다’는 명제조차도 ‘아니야! 하늘은 파랗지 않아’라는 말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 십대의 심리인 것은 그냥 부모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나름 진지하고 서툰 전면적 부정과 부인의 시도의 일종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몰라와 싫어”로 점철되는 십대,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설득하기 어려운 십대를 보며 망연자실 해질 수 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이입장에서는 엄마가 너무 맞는 말을 하는 것도 일순 당황하게 된다. 엄마가 하는 말을 부정하고 부인해야 하는데, 지금 엄마가 정확하고 바른 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을 따르면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시도를 포기하고 여전히 엄마의 품 안에 머무르는 ‘비겁한 존재’가 되는 셈이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차라리 틀린 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주장을 세우고, 엉뚱한 답을 선택하고 ‘이게 맞다’, ‘나는 이게 좋다’라고 주장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시기에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보다 부모가 세워놓은 기준과 만들어 놓은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의 온전한 존재를 확립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이해하기 어렵고,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다투고, 또 실제로 그릇된 선택을 고집하다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을 아프고 힘들게 거쳐야 아이는 자기 마음 안에서 부모가 일방적으로 준 것이 무엇이고, 그 중에서 내 것으로 여전히 남겨둘 거이 무엇이며, 또 버릴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취사선택해나가게 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온전히 자기 마음이 부모의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아이와 부모 모두가 함께 겪고 경험해 나가게 되면 아이는 점차 처음에는 전면적으로 부정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부모의 것과 자기가 새로 만들 것을 적절히 선택하여 자기만의 정체성을 서서히 만들어가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된다. 또 부모도 아이의 이러한 과정을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나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불안을 견디는 힘이 강해지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몸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이 과정은 아이에 따라, 또 부모의 성향에 따라 그 기간이나 강도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부모들은 진짜 성인으로서의 성숙함을 갖춘 존재로 일보 발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